“오늘을 관찰하고 내일을 전망하다”
《화폐전쟁》저자 쑹훙빙의
‘세상 넓게 바라보기’
2018년 5월, 트럼프의 이란 핵 협정 탈퇴로 중동지역은 또다시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3년 전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철회하고 민간용 원자력 개발을 허용했던 미국이 돌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는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주도권을 다시 되찾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2015년 당시 핵 협정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중국과 유럽지역 국가들이었다.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인 이란으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게 됨으로써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일 수 있고, 중국은 이란을 경유하여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의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경제 벨트)를 유럽까지 연결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경제 주도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미국이 중대한 양보를 하면서 이란 핵 협정을 맺은 실제 이유는 바로 IS 때문이었다. IS가 단순한 정치조직이라고 가볍게 여겼던 미국은 실제로 알카에다보다 더 위험한 존재임을 깨닫고 결국 이란 시아파의 역량을 빌려 중동 수니파의 소수 극단주의자를 제압하기 위해 이란의 경제제재를 풀고 타협을 한 것이다.
2007년 베스트셀러《화폐전쟁》에서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와 금융 쓰나미를 예측하여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던 저자 쑹훙빙은 와이즈베리 신작《관점鸿观》에서 “이란의 핵 협상 체결로 단기적으로는 미국은 정치적 자산을 획득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전략 배치에서 결정적으로 패한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2014년 중국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쿠Youku와 함께 국제 정치, 경제, 역사 등의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온라인 금융경제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중동지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등 강대국들 간의 얽히고설킨 패권 경쟁구도를 시사, 경제, 역사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시사적 현안과 연결하여 면밀히 분석한다. 각 대국 간의 어마어마한 암투가 숨어있는 예멘 전쟁, 인질 참수로 유명한 IS의 자금 출처,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진실, 천연가스 확보를 위한 미-중국 간 자원전쟁의 결말 등 독자들은《관점》을 통해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미래를 해독하는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난 5월 트럼프 미대통령은 주 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시킴으로써 팔레스타인과 주변 중동국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물과 불처럼 병존할 수 없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갈등은 최근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 영국 외무부 장관 아서 제임스 밸푸어 경은 당시 시오니즘 연맹의 명예 회장 로스차일드 경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영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이 민족의 터전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며,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힘쓴다”고 의견을 전달했다. 현대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 외교 문건은 ‘벨푸어 선언’이라고 불리며 시오니즘 운동의 결정적 문서로 알려져 있다. 이 문서를 계기로 미국은 전쟁에 동참했으며, 유럽의 전쟁터에 대량의 병력을 투입했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영국은 각국과의 약속을 파기했다. 아랍인들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섯 차례에 걸친 중동 전쟁을 돌아보면 아랍 국가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러한 중동국가들의 좌절감이 초조함과 극단주의를 더욱 키운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은 성공을 거둘수록 더욱 강경해지고 타협을 하지 않았다. 아랍인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으로 그들을 더욱 자극했다. 결국 이스라엘과 아랍 모두 타협의 여지없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영국의 배신은 오늘날 세계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인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단초가 되었다
이란과의 핵 협정 탈퇴를 선언한 미국의 속셈은?
2015년 7월,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감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 파격적인 협상 결과에 전 세계가 환호했으며 사람들은 중동에서 가장 큰 위험요소가 마침내 제거되었다고 생각했다. 같은 해 3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10개국 연합군은 예멘의 후티 반군과 대규모 공습을 개시했다. 겉으로 보기에 예멘전쟁은 중동의 주도권을 둘러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충돌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치, 경제, 역사, 외부 세력의 개입 등 여러 요인이 복합된 지정학적 충돌이며 종교적으로는 시아파와 수니파간의 대립에서 시작된 전쟁이다. 미국이 이란과 핵 협상을 진행한 것은 전략적 조정의 중요한 단계였다. 그러나 시아파에게 유리한 이 사건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린다는 것은 이란의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이 빠르게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제재가 풀리면 수출량이 400만 배럴 이상으로 급증해 이란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란은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로 벌써 파키스탄 국경까지 수송관을 연결해 놓은 상태였다. 미국이 제재를 철회하는 즉시 이란은 천연가스를 수송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외화 수입도 급증할 것이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핵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제재가 풀리면 이란의 국력은 빠르게 증강할 것이며, 언젠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뉴실크로드 전략’으로 해상권 시대를 뒤집으려는 중국
2013년 중국은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최대 화물 수출입 무역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에너지 안전 확보는 중국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중국의 ‘뉴실크로드’ 전략은 고속철도를 이용해 중동과 유럽까지 연결함으로써 해상운송과 경쟁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육상권과 해상권의 격돌이다. 동북 지방에서 출발해 모스크바까지 러시아를 횡단한 후, 벨로루시를 경유해 독일 베를린에서 파리를 지나 최종 목적지인 런던에 도착하는 유라시아 고속철도는 위안화의 국제화 촉진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중국에서 사용되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주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말라카해협을 통해 해상으로 수입되었다. 하지만 말라카해협이 전쟁으로 봉쇄된다면 에너지 수입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중국은 뉴실크로드 전략으로 해상 루트 외에 4개의 주요 에너지 전략 루트를 개발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집중되어 있는 중앙아시아의 천연가스와 석유 수송관로 건설을 놓고 중국은 미국과 계속 팽팽히 맞서고 있다.
천연가스 4개 대국인 러시아, 이란, 카타르, 투르크메니스탄을 합하면 2014년 수입량을 기준으로 중국은 향후 2000년간 천연가스를 확보할 수 있다. 진시황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따라서 중국은 이 4개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중국의 상류에 위치하며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이들은 천연적인 맹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뉴실크로드 전략은 천연가스와 석유 등의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발전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은 십 수 년 동안 탈레반을 섬멸하지 못했다. 미군 병사 한 명이 아프가니스탄에 1년간 주둔하는 데 드는 비용은 50만 달러에 달한다. 10만 명 이상이 주둔하는 데 600억~700억 달러가 지출된다. 테러 사건이 빈발하는 이라크에서는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이런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미군이 계속 주둔할 수 있겠는가. 결국 미군이 철수하자 중동의 요지는 권력의 공백 상태가 되었고, 그 틈을 타서 수니파 극단주의 집단인 IS가 빠른 속도로 세력을 키웠다. 여기에 기존의 알카에다와 수많은 극단주의 무장 단체까지 가세해 중동 일대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아랍권 전체에는 역사와 전통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범아랍주의 움직임이 점차 퇴조한 자리에는 독재자들만 남았고, 독재자들이 제거된 후에는 종교만이 남아 중동은 지금 천 년 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1장_예멘전쟁 배후의 대국 간 경쟁, 12~13p
IS 점령 지역은 주로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서부이다. 시리아 영토의 4분의 1, 이라크 영토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2015년 기준으로 IS는 800만여 인구를 통제했으며, 이것이 곧 그 국토와 경제의 잠재력이다. 전쟁을 하려면 돈과 군량, 병참과 재정이 필요하다. 특히나 방대한 병력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IS의 재정 상태는 어떨까? IS가 조직된 2014년 총수입은 약 14억 달러였으며, 그중 6억 달러는 세금 징수와 약탈을 통해 조달했다. 5억 달러는 이라크의 수많은 은행을 점령해서 얻은 것이고, 1억 달러는 석유로 벌어들인 것이다. 그 밖에 인질을 납치하고 금품을 요구해서 받은 돈이 2천만 달러에 달한다. 골동품을 팔거나 해외 원조로 받은 것도 있다.
언론 매체에는 IS의 인질 참수에 관한 보도가 자주 등장한다. 여기에는 분명한 경제적 목적이 있다. 인질 납치는 석방금을 노린 것으로, 그들의 중요한 재정수입원이다. 잔인한 장면을 온라인에 노출하는 것은 적나라한 경제적 공갈 협박 행위이다. 관련 국가에 돈을 내놓지 않으면 인질을 참수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8장 _ IS 자금의 원천은 어디일까?, 143~144p
무슬림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수니파는 ‘순나(sunnah)’, 즉 ‘선지자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통을 수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가 황제가 되든, 누가 할리파나 술탄이 되든 무슬림의 사업을 계속 확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면 정통파로 인정한다. 이것이 수니파의 태도다. 현대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전 세계 수니파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란 사람들은 대부분 시아파인데 그 이유는 3가지다. 첫째, 이란 사람들은 아랍인이 아닌 페르시아인이다. 페르시아인은 자신들이 키루스 대제의 후예이며, 고귀한 아리안족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페르시아가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할 때 아랍인은 여전히 사막에서 낙타를 몰고 다니지 않았는가! 따라서 페르시아인은 페르시아문명에 대해 강한 우월감을 갖고 있다.
훗날 페르시아가 아랍인의 손에 멸망하자 사람들은 비통함에 잠겼다. 이러한 비통함은 시아파가 알리와 후세인을 위해 복수를 다짐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페르시아인은 감정적으로 시아파에게 깊이 공감한 것이다.
9장_중동 분쟁의 역사적 근원, 169~170p
2009년 오바마가 취임할 때 9조 달러였던 미국 국채는 2015년 18조 달러에 달했다. 미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3퍼센트로 계산했을 때 경제위기 이후 몇 년간 미국의 GDP는 약 20퍼센트 성장했으나 국채는 100퍼센트 상승했다. 세수 성장이 국채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장차 달러 시스템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세수 중 국채 이자 상환(원금 제외)에 들어가는 비중이 12퍼센트이다. 2020년에 이 비중은 20퍼센트로 상승할 것이며, 2030년 무렵에는 36퍼센트, 2040년에는 58퍼센트로 상승할 것이다. 이자 상환에 들어가는 재정 세수가 58퍼센트를 차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은 몇 가지 역사적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첫 번째는 프랑스대혁명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788년 프랑스 정부는 세수의 62퍼센트를 이자 상환에 사용했다. 국왕이 부채를 갚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가를 포함한 채권자들이 모든 계층과 연합하여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보냈다. 프랑스대혁명을 초래한 직접적 원인은 프랑스 정부의 재정 파산이었다.
13장_제2의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위안화 환율 절하, 234~235p
십자군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동방 정벌에 나선 것은 종교적 이유도 있지만 경제적 이유가 컸다. 중동 지역을 점령해 약탈로 전리품을 얻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독일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십자군이 유대인을 약탈하여 많은 재산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독일인들도 라인 지역을 지날 때 각 도시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약탈했다. “유대인을 죽여 당신의 영혼을 구제하자!”는 것이 당시의 구호였다. 유대인 배격과 반유대인 정서가 폭력 행위로 확산된 것이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산에서 10만 명을 학살했다. 종교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경제적 빈곤이 더해지자 십자군은 갈수록 악랄해졌다. 몇 차례의 십자군 원정을 통해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스페인은 1492년부터 대규모 유대인 배척 운동을 전개해 이단 재판소를 세우고 유대인 40만 명을 붙잡아 그중 3만 명을 살해했다. 역사적으로 무슬림은 기독교도보다 유대인에게 훨씬 너그러운 편이었다.
18장_ 유대문명의 부의 계승, 317~318p
오스만제국이 붕괴된 가장 큰 외부 요인은 국제무역로의 영구적인 전환이었다. 청나라의 쇠락을 앞당긴 근본적인 외부 요인은 아편 무역의 성행으로 중국 화폐 시스템이 혼란에 빠진 것이었다. 국제무역로 이전과 아편 무역의 성행이라는 두 외부 요인이 오스만제국과 청나라의 경제를 심각하게 악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각종 요인이 상호작용을 하여 위기가 더욱 커지고 복잡해졌다. 경제 위기는 정치 위기로 변질되었으며, 터키에서는 심지어 민족 위기와 종교 충돌 등으로 비화되었다. 이 모든 것이 외부요인으로 인해 파생된 것이었다. 오스만제국과 청나라는 경제의 악순환에 처한 반면 유럽은 무역 이익으로 공업 생산에 투자하고, 공업 생산이 무역 이익을 늘려주는 선순환 궤도에 진입하여 점점 강력한 사회를 형성했다. 청나라와 오스만제국의 외부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졌으며, 내부 개혁을 통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악순환은 점점 심각해진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제국을 구하지 못하고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외부 요인으로 인한 경제, 사회, 통치 제도와 통치 기반의 악화가 초래한 불가역적 과정이다
27장_ 오스만제국의 붕괴, 4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