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골목 한구석에 자리한 허름한 책방
그곳을 찾은 손님에게 오늘도 악몽을 판다!
수상쩍은 가게에서 헌책을 구입한 이들이 겪게 되는 괴이한 사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아시베 다쿠의 괴기 환상 단편집
1990년 『살인 희극의 13인』으로 제1회 아유카와데쓰야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아시베 다쿠의 『기담을 파는 가게』(2013)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국내 독자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이름이지만, 아시베 다쿠는 『그랑기뇰성』 『홍루몽 살인 사건』 『스팀 오페라』 등으로 본격미스터리대상 후보에 다섯 차례 오르고 1997년부터 2015년까지 19년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목록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며 일본 추리소설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작가이다. 한때 요미우리신문에서 문화부 기자로 일했던 그는 등단 후 중국 최고의 고전이자 4대 기서로 꼽히는 『홍루몽』의 세계를 무대로 한 『홍루몽 살인 사건』으로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는 등 주로 수수께끼 풀이에 중점을 둔 미스터리 소설을 써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기존 미스터리의 틀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학술부터 서브컬처에 이르는 다방면의 지식을 바탕으로 추리, SF, 모험소설의 걸작들을 오마주하는 한편, 비일상적이고 몽환적인 환상담의 요소를 가미한 작품들을 발표해 “환상소설가로서도 단연 돋보인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렇듯 미스터리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여타 장르를 능숙하게 오가며 접목시키는 아시베 다쿠의 작가적 기량은 연작 단편 여섯 편을 수록한 『기담을 파는 가게』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헌책방 서가에 잠들어 있던 고서를 펼쳐본 후 기묘한 사건과 맞닥뜨리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를 그린 이 책에서 그는 본격 미스터리 작가답게 수수께끼 풀이를 내놓기도 하고, 공포를 가미하기도 하며, 각각의 작품에 서로 다른 매력을 더해 독자를 불가사의와 환상미가 가득한 세계로 끌어들인다.
고서 수집가의 집착과 광기가 빚어내는
여섯 편의 악마적인 이야기
대상이 무엇이건 지나친 집착은 일상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기 마련인데, 실제로 40년 이력의 헌책 마니아이기도 한 아시베 다쿠는 『기담을 파는 가게』에서 애호를 넘어 광기에 가깝도록 책 수집에 매달리는 이들의 뒤틀린 내면을 한 편의 기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승화시켰다.
하루가 멀다 하고 헌책방을 드나들며 고서를 수집하는 ‘나’는 마법에 이끌리듯 들어선 어느 가게에서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낡고 허접한 책자를 집어 든다. 오래전 문을 닫은 정신병원의 입원 안내서, 무명작가가 직접 쓰고 제본한 삼류 탐정소설, 결말을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소년 만화, 매혹적인 여인의 사진이 실린 영화 서류철, 한 집안의 역사가 모조리 기록된 비밀스러운 연대기, 그리고 이 모든 책들과 그것을 파는 헌책방의 실체가 담긴 『기담을 파는 가게』……. ‘나’는 수수께끼 같은 헌책을 손에 넣은 후 하나둘 나타나는 섬뜩한 징조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속에 빠져들고, 급기야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작가를 찾아 나서거나 내용의 진위를 파헤치거나 미완성인 부분을 직접 메우기도 하며 깊숙이 관여한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책장 안쪽의 세계가 서서히 현실을 침범해온다.
아시베 다쿠는 그간의 작품에서 환상 가득한 수수께끼를 펼쳐놓더라도 결국은 이를 현실에 수렴시키며, 자신의 창작물이 어디까지나 ‘허구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임을 분명히 해왔다. 그가 만든 명탐정은 수수께끼를 명쾌하게 해결함으로써 독자가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며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명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책 속에는 글로써 빚어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공포와 불가사의가 날뛰고, 결말에 이르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주인공은 물론이고 독자까지 집어삼키는 커다란 어둠이 밀려온다.
『기담을 파는 가게』는 아시베 다쿠가 자신의 괴이한 상상력을 한층 과감하게 발휘해 써내려간 위험하면서도 더없이 매혹적인 작품이다. 헌책이 불러일으키는 옛 시절의 정취와 복고적인 풍미, 그리고 수상쩍은 분위기를 풍기는 ‘기담’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누구라도 화자인 ‘나’처럼 그 마력에 사로잡혀 헤어날 수 없는 악몽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어느 서점, 헌책방 혹은 도서관 서가에서 골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당신도 ‘나’의 일원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렇다. 이 『기담을 파는 가게』를 골라 여기에 담긴 이야기를 읽었다면 부디 앞으로 기다릴 운명, 특히 암흑과 등 뒤를 조심하기 바란다. 느닷없이 떠밀려 떨어지고, 몸이 갈가리 찢긴 끝에 책 속에 갇히지 않도록.
_본문 중에서
▶ 책 속으로
―또 샀네.
머리 바로 위로 허름한 전철이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역시 노후화가 우려되는 고가 선로를 달려가는 역에서 몇 분 거리, 짤막한 상점가 한구석에 위치한 헌책방. 가게 이름이 입체 글씨로 새겨진 간판 밑을 지나 찌뿌드드한 하늘 아래로 나오자 한숨 섞어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되어 흐릿해진 유리문 너머에는 옆판이 휠 만큼 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이 죽 늘어서 있다. 책장에서 풍기는 독특한 냄새와 어스레한 빛에 감싸여 어느 책을 살까 요모조모 살펴본다. 마침내 이거다, 하고 집어 든 책을 계산대보다 감정소라고 부르는 편이 어울릴 법한 가게 안쪽으로 가지고 갔다.
그런데 손을 뒤로 돌려 문을 닫은 순간,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 저질렀구나. 지폐 몇 장과 바꾼 하도롱지 봉투에 담긴 오늘의 수확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분명 방금 전만 해도 소설의 소재로 써먹을 만한 책을 싼값에 사서 땡잡았다고 여겼는데…….
_11~12쪽, 『제국 수도 뇌병원 입원 안내』
시치조 쇼코가 거기 있었다. 사진 속의 그 아름다운 자태에 색채와 움직임 그리고 삼차원적인 육감까지 더해진 모습으로!
말도 안 된다. 소설 『푸른 수염의 성 살인 사건』이 간행된 지 이미 80년 가까이 지났고, 언제 영화화가 기획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족히 60, 70년은 지났으리라. 그때 열일고여덟 살이었다고 쳐도 벌써 칠순이 넘었을 것이다.
설마 동일 인물일 리 없다. 하지만 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판박이였다. 귀한 집 따님 같은 느낌의 고풍스러운 의상까지도 사진 속 이미지와 겹쳤다.
‘이, 이거…… 어떻게 된 거지? 저기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
솟구치는 호기심 그리고 정반대의 두려움 비슷한 감정 사이에 꽉 껴서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_182~183쪽, 『푸른 수염의 성 살인 사건 영화화 관련 철』
주인공의 장! 주인공이라니 도대체 누구지?
두말할 것 없이 한 권을 통틀어 선조부터 부모님까지 그려낸 전편의 결말 부분에서 세상에 태어나 울음을 터뜨린 아기다.
만약 그 아기가 나이고, 주인공으로서 후편에서 성장한다면 어떻게든 꼭 읽고 싶었다. 아니, 읽어야 했다.
책 속에서 나는 어떻게 그려질까. 얼마나 정확할까. 내 시점에서 묘사하는 데 그칠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부분도 그려질까.
「주인공의 장」에는 내가 어디까지 담겨 있을까? 소년 시절, 청년기, 아니면 어른이 된 이후의 모습도 담겨 있을까? 실로 흥미가 동했다.
그리고…… 어쩌면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그려져 있지 않을까?
_230~231쪽, 『시간의 극장 · 전후편』